취직은 인생의 필수 코스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20대 후반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구직 활동을 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취업을 미루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게으름이나 책임 회피로 보기엔 이면에 자리한 심리적 요인과 사회 구조적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글에서는 ‘현실회피’, ‘자기 탐색’, ‘불안’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왜 취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현실회피: ‘무서워서 시작도 못하겠어요’
현실에 대한 회피는 가장 대표적인 비취업 심리입니다. 졸업을 앞둔 20대 후반 청년들이 본격적인 사회 진입의 문 앞에서 망설이고 물러서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준비를 요구하면서도, 막상 준비되어도 진입 자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쓰고도 연락 한 통 없는 현실, 면접 탈락의 반복, 가족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오는 압박감은 자존감을 지속적해서 갉아먹습니다.
이들은 반복되는 거절과 실패 경험을 통해 "나는 안 될지도 몰라"라는 자기 낙인을 내리기 위해 시작합니다. 점점 더 도전이 무서워지고, 시도조차 포기하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지금은 때가 아니야’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됩니다.
사회생활 자체에 대한 공포감도 큽니다. 복잡한 조직 문화, 권위적인 상사,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 등은 사회 초년생에게 큰 심리적 장벽이 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환경에 익숙해진 세대는 오프라인 사회 적응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크게 느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 회피 심리는 청년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 깊숙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탐색: ‘그냥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아요’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취업을 미루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자기 탐색’입니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왜 일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예전 세대와 달리, 오늘날의 청년들은 ‘일 = 생존’의 논리를 넘어서 ‘일 = 자아실현’의 도구로 인식합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것이 ‘정답’이었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갭이어(gap year)를 선택해 세계를 여행하거나,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보며 삶의 방향을 재설계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취업을 늦춘다기보다는, 좀 더 나와 맞는 길을 찾기 위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입니다.
자기 탐색의 과정은 때로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깊이 있는 삶과 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주변의 시선입니다. 부모 세대는 이를 ‘백수’로 간주하고 압박하며, 친구나 동료들의 성공 소식은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방황은 미래의 정착을 위한 소중한 준비기간일 수 있습니다. 취업 시장이 좁고 경쟁이 치열한 만큼, 단순히 ‘어떤 일이든 잡자’가 아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것은 매우 건강한 태도입니다.
불안: ‘지금 선택이 틀렸을까 봐 무서워요’
불안은 취업을 회피하거나 미루는 심리의 중심축입니다. 20대 후반은 인생의 전환점에 있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겪는 불확실성과 자기비판은 극도로 확대되기 쉽습니다. “다들 일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지?”, “벌써 늦은 건 아닐까?”, “내 선택이 틀렸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청년들을 조급함과 무기력함 사이에서 방황하게 만듭니다.
특히 SNS는 이런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또래의 성공 소식이 넘쳐나는 SNS 속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처럼 느끼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SNS를 보며 “나는 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라는 불안과 자책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점점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도전하지 않음’을 선택하게 만들고, 이 선택은 다시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불안은 단순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신체화 증상이나 우울감, 수면장애 등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정신력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문가와의 상담, 일기 쓰기, 규칙적인 생활 습관 유지, 가벼운 운동 등은 불안을 해소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20대 후반에 취업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 선택의 배경에는 회피, 자기 탐색, 불안이라는 복잡한 심리와 상황이 얽혀 있으며, 이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왜 멈춰 서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멈춘 시간은 때로,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멈춤은, 준비입니다.